그림

너에게로 달려가는

우노바 2015. 7. 24. 01:11

제목 의미없음 록맨썰 난 뭘 쓰든 제로엑스 기반 




제로를 노하게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굳이 그를 자극할 필요 같은 건, 나에게 있어서는 그날 몸이 성치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슬금슬금 심심해질 때만 건드렸었고, 그것도 그가 점점 약오를 때쯤 관두거나 엑스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엑스는 훌륭한 방패다. 당장에라도 세이버를 뽑아 나를 한 큐에 두 동강 낼 무시무시함이, 엑스 앞에선 한없이 물렁물렁해진다. 엑스는 제로 대신 날 타일러주기도 하지만, 대게 "엑셀, 베이스에서 소란 피우지 마. 그리고 제로, 엑셀은 아직 어린애니까. 너그럽게 봐줘." 라고 하는, 그다운 상냥함으로 제로의 분노를 마치 뜨거운 쇳덩어리를 물로 천천히 식히듯 달랜다. 엑스가 제로를 달래려 짓는 눈웃음에 제로의 표정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을 테다. 이미 베이스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지만, 이 둘의 진득한 우정? 아니, 그것도 아니다. 모두가 납득했던 핑크빛 사랑의 오라가 그 둘 사이에서 반짝반짝하게 퍼져 나가는 것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지켜보았다. 뭐,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엑스나 제로 둘 다 말해주려고 하지 않아 헌터 베이스 사건일지를 통해 안 거지만, 제로는 이미 몇 번이나 엑스를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내던졌고, 엑스 또한 그런 제로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던 것, 그로 인해 전우나 친구로서의 우정과 '그것'의 백지장 한 장 차이를 알게 모르게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는 건 짐작이 가능했다. 그리고 뭐 지금은, 예상대로. 이미 시그너스들은 눈치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제로가 엑스를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의 목숨을 내버리면서까지 그를 지켰던 것처럼, 제로의 엑스에 대한 마음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방패로 이용했던 것이지만, 지금만큼은 굉장히 위험하다. 

 

"엑스…?"

 

기능이 정지한 줄로 알았던 루미네에게 다가갔다가 웬 촉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후, 그 뒤의 기억은 깡그리 날아간 내 눈앞에 펼쳐진 건, 한 줄기 연기를 내고 있는 내 불렛과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진 엑스였다. 

 

"잠깐만…잠깐만 엑스? 설마…"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나는 불렛을 엑스 쪽을 향해 쥐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엑스를 공격해서… 쓰러트렸다고? 

 

"엑스! 엑스! 정신 차려 엑스!" 

 

큰일났다. 내가 엑스를 쏴서 쓰러트렸다. 분명 내 의도가 아니지만 어쨌건 엑스가 쓰러져버렸다. 나는 황급히 엑스에게로 다가가서 그를 들어 올렸다. 눈을 감은 채 미동이 없다. 상체를 확인하니, 분명 내 불렛으로 관통한 듯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게 메인 동력로를 건드렸나? 엑스에게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순환하던 검붉은 오일이 주륵주륵 흘러나와 엑스를 뒤덮었다. 끔찍한 몰골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엑스를 살려내야 한다. 죽으면 안 된다. 도대체 십 분전의 난 무슨 미친 세뇌를 당했길래 엑스를 쏘았는가. 엑스를 일으켜 세워 제로를 부르려고 할 찰나, 위협적인 에너지가 앞에서 느껴졌다.

 

"엑셀…." 

"제,제로. 오해야 이건! 그러니까…" 

"…이레귤러 엑셀, 살려두지 않겠다!" 

 

제기랄! 내 입에선 자연스레 욕이 튀어나왔다. 제로는 온몸이 붉은빛으로 싸여 마치 광기 어린듯한 눈으로 이쪽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 쥔 세이버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진다. 엑스에게서 미처 손 뗄 참도 없이, 제로는 매섭게 대쉬해왔다.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내가 일으킨 엑스를 얼떨결에 놓치자마자, 제로는 순식간에 엑스를 한 손으로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세이버를 크게 호를 그리며 휘둘렀다. 정말 가까스로 호버링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날 파워였다. 충격파에 땅이 쩌적 갈라지고, 먼지 사이로 바닥의 파편들이 무수히 튕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다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튀기로 했다. 완전히 눈이 뒤집힌 제로에게 무슨 변명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엑스를 내 손으로 쓰러트렸으므로 정말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의 상태는 온통 하얬다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흐릿하게 윤곽이 보일 정도로 나빴다. 아무리 눈을 깜빡이고 비벼봐도 그대로다. 젠장 모르겠다! 나는 일단 튀고 나중에 사로잡혀 베이스에 끌려가 변명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제로는 진짜로 날 죽일 것이었다. 양 옆에서, 세이버를 휘둘러 나는 에너지파가 쉴 새 없이 지나간다. 그것들은 바닥이나, 혹은 주변에 놓인 오브젝트에 부딪혀 커다란 굉음을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 파편들이 눈 위를 어지러이 지나가는 것을, 나는 불렛을 치켜들어 쏘아나갔다. 그 바람에, 나는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인 양발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장단 맞춰 제로가 몸통박치기를 할 것인 양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으아악!" 

 

어따 쓰는지도 모를 컨테이너가 무수히 앞을 가로막고 있다. 살짝 스쳤지만, 가까스로 짚고 뛰어넘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오브젝트는 왜 지나가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있는 거지? 습관적으로 툴툴거리며 잠시 속도를 늦추나 싶었을 찰나, 공기를 찢어버릴 듯한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로는, 그대로 그 무더기를 단칼에 산산조각내버린 것이다. 앞이 안 보일정도로 희뿌옇게 일어나는 연기 사이로, 춤추는 철제 조각 무더기를 헤집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거대한 무언가. 광채가 일어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눈.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나는 전력질주했다. 도대체 저 괴물은 언제까지 따라올 셈이야…! 

 

"히익? 엑셀?!" 

 

순식간에 지나쳐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베이스 내 레플리로이드이려나 싶었다. 잠깐, 레플리로이드라고? 

나는 그제야, 앞을 겨우 내다볼 수 있었다. 헌터 베이스 복도였다. "메디컬 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아, 의식을 차리기 직전의 나는 메디컬 룸에 있음직했다. 촉수를 맞아 쓰러진 나를, 엑스는 이 메디컬룸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간호하는 와중에, 내가 미쳐 돌아서 엑스를 냅다 쏴 버린 것이다. 제로가 저렇게 분노해도 할 말이 없다. '잠깐 저거 제로 아니야?' 따위의 소리와, '제로 잠깐! 멈춰!' 하는 시그너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안심하고 싶었으나, 그에 응할 제로가 아니다. 도망만 다녔다간 이 헌터 베이스를 아작을 내겠다 싶어, 나는 쫓아오는 제로를 향해 불렛을 겨누었다. 

뭐, 위협 목적은 전혀 없었지만, 제로는 가소롭다는 것처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세이버를 휘둘렀다. 충격파가 위협적이다. 분산시킬 목적으로, 충격파를 향해 불렛을 쏘았다.

 

"제로! 엑셀! 그만둬!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카랑카랑한 에이리아의 음성이 들렸다. 에이리아라면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냥 착각이었나 보다. 제로는 에이리아를 잠깐 바라보더니, 곧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 제로는 한층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