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탈전
록맨 제로 기반 제로>엑스<사천왕 구도
1.
길고 길었던, 지긋지긋한 싸움이 마무리 지어진 후, 우리는 그분의 손길에 이끌려, 너덜너덜해진 몸을 버린 레플리로이드의 종착 지점인 사이버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우리는 평화로웠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일상에, 이전까지의 일들은 잊어버리다시피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우리들의 본 임무는 소멸한 지 오래였지만, 우리는 서로와 같이할 수 있다는 것, 엑스님을 옆에서 보좌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은 언제까지나 지속할 것만 같았다.
2.
슬프게도 엑스님에겐 그가 가장 지키고 싶어 마지않아 했던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 또한, 엑스님의 부탁에, 그리고 엑스님이, 우리가 지켜내고 싶어 했던 인간들, 레플리로이드들을 위해, 엑스님이 가장 믿고 있는 그 로봇을 감쌌다. 그것이 엑스님이 원하시던 것이었고, 우리 또한 믿고 있었다.
제로는, 엑스님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3.
"슬프게도"란 말머리의 의미란 이렇다. 엑스님은 우리와 같이 지내시는 와중에도, 현실 세계를 보고 오실 때쯤이면, 수심을 얼굴에 드러내곤 하셨다. 현실 세계에 간섭할 수 없게 되어 버려, 유일하게 현실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창밖으로 내던진 시선 끝엔 늘 제로가 닿아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엑스님의 곁에 있어도, 우리가 메꾸기엔 엑스님에게 있어 제로의 빈자리란 그렇게 컸던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배경도 알고 있었지만, 질투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그것을 제일 노골적으로 비추는 건 레비아탄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 주 표적은 엘피스로, 언제부턴가 엘피스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4.
오메가의 폭발에서 제로를 지켜내고, 우리를 사이버 세계로 이끄시느라 자신의 몸조차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무척이나 약해지신 엑스님은, 다행히 휴식을 취하시면서 점차 생기가 돌아오셨다. 이전의 그 인자한 미소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안심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엑스님은 과거와 같은 힘을 더는 갖고 계시지 못하였다. 우리가 엑스님을 사이버 세계에서 처음 뵈었을 때는, 가벼운 바이러스조차 힘겨워하시는 모습이셨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우리는 엑스님에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으나, 다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원했을 것이다.
5.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엑스님이 막 밖으로 나가셨을 때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돌아오신 엑스님의 기척을 느끼고 다가갔을 때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녀…아니, 네가…」
「…」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올 수 있는 거야!!!」
그래, 그곳엔 특유의 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그러나 꼴이 말이 아니게 누추해진 제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두 팔엔, 축 늘어져 온몸을 제로에게 맡기고 눈을 감고 있는 엑스님이 계셨다…
6.
제로의 말을 듣자하니, 라그나로크가 붕괴하며 추락해 버려, 대기권에 진입하는 도중 전송 장치에서 빛이 나기에, 그곳으로 다가갔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이버 엘프 특유 구체의 모습인 엑스님이 계셨다고 했다. 아마 시엘이 끝까지 제로를 전송하려고 보내놓은 에너지 덕분에 엑스님이 그곳에 닿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제로는 그렇게 짐작하면서, 자신을 감싼 빛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자신도, 엑스님도 어딘가에서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엑스님이 그 모양이신 건 당연했다. 안 그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정말 온 힘을 다 써서 제로에게 접근하셨을 것이다. 엑스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몰골이 말이 아닌 둘을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만 보더라도, 앞으로의 시나리오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평화는 영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7.
그리고,
「엑스님을 우리에게 넘겨라…제로!」
하는, 하르퓨이아의 으르렁거리는 선전포고와 그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엑스님을 안은 팔에 더 힘을 준 제로의 도발에, 죽어서도 계속되는 우리들의 쟁탈전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