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FLOW
카피엑스와 오메가 본문
하나.
─가짜군.
오메가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파란 로봇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순간에 간파해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백 년 전 그를 작살내 버린 두 로봇 중, "푸른 빛의 구원자"라며 인간들이 그토록 추앙하던 존재였다.
그 꼴이 나고 온몸을 분리당해 우주선에서 백 년을 잠들어 있었어도, 몸에 깊게 새겨진 파랑과 빨강의 존재는 잊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생생하고 뚜렷하게, 오메가의 눈앞을 지나쳐간다. 그때 그 붉은 로봇도 이 녀석과 같은 가짜였지.
오메가가 어떻게 이 푸른 로봇이, 오리지널이 아닌 카피, 그것도 바일에 의해 부활한 속칭 MK-2였는지를 간파해 냈는지는 그조차도 몰랐다. 사실, 그의 성격상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카피에게는 없는, 오리지널에게서 느꼈었던 무언가의 아우라가 있었다. 오메가는 그 느낌을 똑똑히 기억해냈다. 진절머리가 나서 몸을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엑스'를 닮은 로봇을 다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에 무표정하게 오메가를 응시하던 카피 엑스의 눈이 찌푸려졌다.
"기분 나─...쁜 녀석이-군. 건-방지게 사람─...을 막지 말란 말...이다."
어눌한 음성이 굳게 닫혀 있던 입에서 날카롭게 비져 나온다. 이 녀석의 말은 이상했다. 정상적인 음성이 아닌, 기계음이 심하게 섞여 있는 데다가, 버퍼링이 걸리는 듯 나른하게 늘어지는 발음에, 카피 엑스 자신도 놀랐는지 아까보다 인상을 더 구기며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곧 먼저 발을 움직여 제보다 훨씬 큰 오메가를 밀치듯 지나쳤다.
카피 엑스의 높은 목소리에 잠시 쟁쟁히 울렸던 복도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신경질 내는 듯한 발소리에 다시 메아리쳤다.
바일이 카피 엑스를 다시 깨워낸 지 얼마 있지 않아, 오메가는 그가 누구인지,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없어진 진짜 엑스를 대신해 엑스 행세를 하며 통치자의 자리에 올라 앉은 일종의 대체재였다. 그리고 에너지 공급 문제로 인해 레플로이드에 대한 탄압이 심해져, 레지스탕스에 의해 처치해야 할 1순위 대상이 되었고, 결국 화려하게 부활한 제로에 의해 썰려 죽어버렸다는, 생각을 깊게 하는 일이 없는 그에게 있어서는 간단명료한 기승전결이었다. 가짜 주제에 진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군. 그때까지만 해도 오메가에게 있어 카피 엑스는, 그저 오리지널을 흉내내는 시건방진 가짜 영웅이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메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로봇은 굉장히 웃기는 로봇이다. 정말로 왕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 왕이 신하 다루듯 오메가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명령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오메가는 순순히 따라주기로 했다. 나름의 재미였던 것이다. 카피 엑스의 행동은 오메가에게 마치 어린아이가 재롱을 부리는 듯 느껴졌다. 그는 목마 타듯 오메가를 둘러싼 구속구 갑옷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는 걸 좋아했는데, 무심한 듯 새초롬하게 앞을 바라보는 표정이 귀엽기 그지없어, 오메가는 속으로 천천히 키득키득 웃고는 했다.
카피 엑스는 '고맙다'라던가의 답례 인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뭐 그 딴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겠으니 그렇겠지. 하지만 가끔, '팬텀보다 낫다' 라는 요지의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카피 엑스에 있어서는 나름의 칭찬이었다. 이것 또한 재롱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 오메가는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둘.
"처음부터 아주 웃기는 짓거리만 해 왔던 거다. 난 엑스가 누군지도 몰라. 나처럼 생겼다는 것만 알지. 내가 엑스를 대신해 엑스가 해왔던 것을 이어받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대로 행했다. 엑스는 인간의 영웅이라고 했다. 나도 인간을 위해왔다. 인간의 요구 사항은 전부 들어줬지. 그러라고 나를 만들었던 것 아니었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도 못마땅했느냔 말이다, 개 같은 놈들, 도대체 내가 왜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빌어먹을 욕을 다 처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카피 엑스는 오메가가 앉았었던 커다란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눈은 오메가만을 쏘아보고 있었고, 흥분한 입에서 말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그는 그대로 굉장히 화가 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불안정했던 발음이 깨끗하게 술술 나오는 걸 들으면서 오메가는 그의 분노를 짐작했다.
카피 엑스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살짝씩 흔들렸던 동공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눈빛으로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오메가."
오메가는 말없이 팔짱을 낀 채로 카피 엑스를 응시했다.
"고쳐진─게 아니야. 나...는, 이때...껏...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제로의 앞...에서. 나를 부-쉈더-ㄴ 녀석 앞에-서, 왜 내가 이딴...취급을, 영웅 노릇..을 하라고 해서 했더니, 제거─대상이 되어 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게 되었는지..."
말을 하기가 버거운지 실컷 기침을 했다. 안쓰러운 기계음이 덜덜 떨리는 입에서 튀어나온다.
"오메가, 나를 들어. 졸...려 죽겠으니까...수면실로 데..려가."
한참을 기침하더니,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오메가에게 명령한다. 오메가는 순순히 그 큰 몸을 일으켜 카피 엑스를 부드럽게 한 손으로 잡아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곧이어 잠잠해져 가는 동력로 소리를 들으면서, 오메가는 천천히 수면실로 향했다.
그가 어떻게 카피 엑스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르는지는, 바일도 몰랐다. 바일은 그런 오메가를 보며 혀를 찼다. 이래서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오메가는 바일의 그 툴툴거리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깨끗하게 무시했다.
이 작은 가짜 영웅은, 안쓰러운 존재였다. 그가 올라앉아 있었던 네오 아르카디아의 지배자라는 자리는 참으로 위태위태한 옥좌였고, 인간들은 오리지널에 비해 한없이 어린아이 같은 존재에게 오리지널의 이상을 요구한다. 이 녀석도 결국은, 인간의 빌어먹을 욕심의 희생자일 것이다. 레지스탕스들에 있어서 카피 엑스는 자유를 위해 처분해야 할 존재지만,네오 아르카디아가, 너네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인간이 원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놈들이군. 이레귤러는 너희야.
어두운 방에 오메가의 발걸음이 울려 퍼진다. 그는 파란빛을 발하고 있는 수면 캡슐에 카피 엑스를 뉘었다. 곤히 잠들었는지 기척도 없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그는 문득 구속구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속 갑옷으로 인해 오메가는 카피 엑스보다 한참이 컸다. 그래서 카피 엑스가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카피 엑스와 비슷한 눈높이에 있어보고 싶었다. 그냥, 그래 보고 싶었다.
셋.
자폭 장치가 심어져 있다는 걸 오메가가 알게 된 것은, 카피 엑스가 레지스탕스를 반란군으로 정식 규정짓고 탄압을 선포한 후였다. 바일은, 자신이 네오 아르카디아를 주무르기 위해 카피 엑스에게 이런 함정을 심어 놓은 것이다. 오메가는 열이 끝까지 뻗쳐 올랐다. 겨우 이런 쇼를 하려고 또다시 엑스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자폭 장치라니.
바일에게 박박 대들 셈이었다. 뭔 놈의 자폭이야, 자폭은. 그깟 연출로 화려한 폭발 퍼포먼스를 보여주시겠다.
온 공간이 울릴 정도로 그는 신경질적으로 바일의 방에 들어섰다. 바일은 없고, 옆의 검사 캡슐에 다닥다닥 코드를 꽂아 놓고 잠들어 있는 카피 엑스가 보인다. 격양된 목소리로 카피 엑스를 불렀다.
"엑스…!"
그에 감았던 눈꺼풀이 느릿느릿 올라간다. 카피 엑스는 나른한 표정으로 오메가를 바라봤다.
"부른..적 없..다. 무-..슨 일이지."
지금껏 올린 글중에 완결지은게 하나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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